전과는 많이 달라진 호빠입니다

 


"말하자면 '호빠'였군요." 그러자 막 웃었다. "제 강남호스트이 그런 얘길 해요. 성향이 전 좀 사회운동가 같은 스타일이고, 제 강남호스트은 안보를 중시하는 쪽이거든요. 하하." 이질적인 조합은 부부만이 아니다. 그런(?) 책을 보던 사람이 어쩌다(?) 이런 서정적인 그림 작업을 하게 됐을까.


"강남호스트에겐 좀 비현실적이란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저의 힘 아니었을까요. 전 제가, 그냥 좀 잘될 거라고, 성공할 거라고 믿는 편이거든요. 남들은 뭐라 해도 그중에서 제게 제일 유리한 말만 골라 듣는달까요. 하하." 역시 삶을 긍정적으로 사는 데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만 한 게 없다.


근자감으로 뭉친 출판계 핫 일러스트레이터



반지수 작가의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집에 들어서자 고양이 두 마리가 맞이했다. 노란 녀석은 토니, 고등어 무늬 고양이는 토르라 했다. 토르는 심드렁한 듯 근엄했고, 토니는 낯선 손님에게도 선뜻 다가와 몸을 한껏 비벼댔다. 거실 한편엔 빈틈없이 책을 꽂아두는 데 최적화된 사이즈로 별도 제작된 책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책장들 맞은편엔 일러스트 작업을 위한 컴퓨터와 태블릿이 놓인 넓은 책상이 있었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반지수 작가의 고양이 토니가 서재에서 스르르 잠들고 있다. 인천=정다빈 기자



이 정도면 '책 표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에 어울려 뵈는 풍경이다. 그런데 그 책장엔,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정치경제학 교과서' '국가와 혁명' '맑스주의 역사 강의' '자본론' '한국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같은 책들이 꽂혀 있다. 글쎄, 이런 책들이 북 일러스트와 어울리던가.


반 작가는 요즘 출판계에서 가장 핫한 표지 일러스트레이터다. 2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불편한 편의점'을 비롯, '패밀리 트리'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 같은 책들의 표지를 그렸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 표지, 제가 그렸습니다"



책은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글자 위주 매체다 보니 표지 디자인도 대개 글자 중심으로 간다. 제목이나 작가 이름을 돋보이게 하거나, 그림이나 사진을 쓴다 해도 제목을 해치지 않게 분리해 두거나 여백을 크게 쓰는 편이다. 그런데 반 작가는 많은 색을 써서 구체적인 사물과 사람을 애써 자세히 묘사해 둔 맑은 풍경화 느낌의 그림을 그렸다. 다른 길을 간 셈인데 이게 되레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반지수 작가의 작업해온 책 표지 중 일부. 맨 오른쪽 '반지수의 책그림'은 올해 낸 에세이인데 표지는 반 작가가 개인전 때 선보였던 그림을 그대로 가져왔다. 인천=정다빈 기자



책 표지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지난해엔 홍익대학교 앞 갤러리에서 개인 초대전도 열었다. 소품이긴 했지만 책 표지 작업과는 무관하게 별도로 그린 그림 20여 점도 함께 선보였다. 작가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반지수의 책그림'이란 에세이도 냈다. 이 책 표지엔 개인전 때 선보였던 그림을 그대로 썼다. "갤러리스트 말씀으론 이 표지 그림의 원작을 '미술계의 엄청 큰손'이 사 가셨다고 하는데 누가 사 가셨는지, 저도 궁금해요."


올해엔 '반지수의 책그림'에 이어 에세이 3권에다 컬러링 북 1권을 추가로 낼 예정이다. 한 해 5권의 책을 쏟아내다니. 반 작가라는 사람, 그리고 반 작가의 그림 자체가 이제 어느 정도 하나의 '브랜드'처럼 인식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개인전도 열고 내친김에 해외 진출까지



곧 일본으로 건너가 북 토크도 한다. 반 작가의 그림이 해외 시장에서도 '먹힐 것'이란 판단에 따라서다. 그러고 보니 '불편한 편의점'이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같은 책은 해외 수출본에서도 반 작가의 그림을 그대로 썼다. 수입도 꽤 쏠쏠하다. "국내 서적은 일회성 매절 계약으로 끝나는데요, 책이 잘나가면 사장님이 인센티브처럼 보너스를 얹어 주시기도 해요. 해외에 나간 책은 저작권이 제게 있어서 판매될 때마다 수입으로 들어오고요."



반지수 작가가 표지 작업을 해온 책들을 쌓아놨다. 인천=정다빈 기자



최근엔 유명 남성 아이돌 그룹으로부터 협업 제안도 받았다. 이름값도 높일 수 있고, 그림에 그치지 않고 애니메이션까지 하는 작업이어서 수입도 쏠쏠할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성사되진 않았다. 주변에서는 아까운 기회라 하지만, 정작 반 작가는 무덤덤하다. 그런 작업은 당연히 상업적 요구가 뒤따르게 마련이고, 그러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서다. "일 내용적인 면에서는 작가로서 존중해 주고 대우해 주는 출판계 쪽 일이 더 낫다"고도 말했다.


이 정도면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은, 자존심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떠올릴 법도 한데, 반 작가는 그게 아니었다. 물론 어릴 적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집도 너무 시골이고 집안 형편상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접은 뒤론 사회운동가를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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